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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 대법관 후보자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  출석 당시)
2018년 항소심 재판부에 법률 의견서가 하나 제출됩니다. 제출자는 바로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서울대 교수 시절 법률 의견서 작성을 대가로 대형 로펌으로부터 고액 보수를 받아 논란이 불거진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쓴 겁니다.

KBS가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의견서를 보면 첫 장부터 피고의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의 의뢰에 따라 의견서를 작성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 소송은 한 신탁회사와 리조트 업체 간의 부동산 매매 계약과 관련된 해묵은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권영준 후보자가 작성한 법률 의견서 (2018년 7월)
의견서에서 권 후보자는 1심에서 패소한 피고 측의 판결문을 인용한 뒤 해당 판결의 근거가 된 법리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민법상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하려 할 때 재산을 빼돌리거나 해서 강제집행을 어렵게 하는 '사해행위'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권 후보자는 35페이지에 걸쳐 기존 판례와 자신의 연구 등을 자세히 인용해가며 의뢰자를 위한 의견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에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1심 법원의 판단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한 법무법인이 변호하는 피고를 위해 법원 판단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겁니다.

권영준 후보자가 작성한 법률 의견서 (2018년 7월)
35페이지짜리 의견서를 작성해주고 받은 보수는 모두 3,150만 원입니다. 대학교수가 의견서를 작성해주고 이렇게 많은 돈을 받는 게 과연 정당한지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문제가 됐습니다.

김회재 /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 (더불어민주당)
"무슨 놈의 의견서 하나 작성하는 데 3천만 원, 5천만 원 받는 대학교수가 어디 있습니까? 변호사들도 사건 수임을 할 때 3천만 원, 5천만 원짜리 그런 사건 수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권영준 / 대법관 후보자
"우선 저는 저의 독립성을 생명으로 여겨왔고 또 학술적 소신에 따라서 저의 학자적 의견을 개진하여 왔습니다. 그 부분이 과연 재판부에 대한 청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인사청문회에서는 명문대를 나온 판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가 작성해준 의견서는 그 자체로 재판부에 유무형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재판부 사이에서도 선후배나 사제 간 같은 인간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의견서에 높은 보수가 지급된단 겁니다. 그렇기에 의견서 작성 자체가 공정한 행위인지를 따져 묻는 질문이 청문회 당시 쏟아졌습니다.

장혜영 /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 (정의당)
"소송의 상대방이 이런 수천만 원짜리 법률의견서를 받을 수 없는, 그런 걸 의뢰할 정도로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보셨는지 묻고 싶어요. ... 이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법률 의견서를 제시하는 것이 매우 독립적이고, 공정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십니까?"

권영준 / 대법관 후보자
"말씀하신 지점은 제가 겸허히 경청하고 이해를 하겠습니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서 거절을 한 경우가 저는 굉장히 많았다는 점 말씀드리고요."
(지난 11일 , 국회 인사청문회)

권영준 후보자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학자로서 소신에 기초한 견해를 밝혔다"고 해명했습니다.

KBS가 입수한 의견서를 보면 그렇게 볼 여지도 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본인의 전문 연구 분야를 기초로 한 의견 개진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이 의견서에는 본인의 소속과 의뢰자, 법원 판단에 대한 의견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이 의견서를 받아 본 재판부 입장에서도 과연 순수한 학자적 견해를 담은 문서로만 보였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의견서가 아직 62건이나 더 있다는 겁니다. 권영준 후보자가 최근 5년 동안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8억여 원을 받은 대가로 써준 의견서는 모두 63건입니다. 그 중에 단 1건 만이 공개된 겁니다.

의견서를 입수한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권 후보자가 작성한 의견서는 변호사법 등 현행법 위반 소지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며 "권 후보자의 의견서를 전부 들여다 보지 못한 상태에서 대법관 후보로서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의견에 무게가 실리면서 국회 인사청문 특위는 당초 오늘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의결을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후보자에게 나머지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 권영준 후보자 "일방 당사자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학문적 견해 왜곡한 적 없어"

이에 대해,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공식 입장문을 냈습니다.

권 후보자는 "의견서를 제출한 국내 소송 사건은 기존에 판례가 없거나 판례가 있더라도 변경이 필요한 사건, 선행연구가 부족하여 새로운 학설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사건, 학설이나 판례가 있더라도 통일되어 있지 않아 정리가 필요한 사건 등에서 학문적 입장을 밝힌 것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권 후보자는 "다만, 학술논문과 달리 의견서는 특정 사건에 관하여 작성되는 것이고, 그동안 이 부분을 부인한 적은 없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입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부당하게 왜곡하였는가 여부"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의견서에서 이미 밝힌 바 있는 기존의 학문적 견해를 심화하여 표명하였을 뿐 일방 당사자를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학문적 견해를 부당하게 왜곡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권영준 후보자는 "공직 후보자로서 정확한 상황을 설명드리는 것이 도리로 생각되어 위와 같은 입장을 전해 드리지만, 청문회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견서 제출과 관련된 지적에 대하여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기존의 입장에 전혀 변함이 없다는 점을 거듭 말씀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