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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양지우입니다, 이슬기입니다.
5년 전 동일본을 덮쳤던 대지진과 쓰나미.
아직도 10만 명 넘는 주민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이와테 현부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까지 피해 지역을 따라 남하하며 참사 5년 동일본의 지금을 살펴봤습니다.
특파원현장보고 시작합니다.
어제 3월 11일은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일어난 지 딱 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10만 명 넘는 주민들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마무리는 언제 끝날 지 기약이 없습니다.
대지진으로부터 5년, 동일본의 현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박재우 특파원이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빨리 피해! 그쪽이 아니라 시청으로 피하라고!"
<녹취> "끝났다, 모든 게 끝장났어!"
거대한 쓰나미가 사람도 집도 마구 집어삼켰던 그 날.
미야기 현 `게센누마`는 쓰나미 최대 피해 지역이었습니다.
쓰나미에 대형 화재까지 일어나면서 7만여 명이 살던 도시는 폐허가 됐습니다.
거대한 선박이 쓸려 온 시가지에서는 형체가 남아있는 집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다시 찾은 게센누마.
집들이 철거된 부둣가는 잡초만 무성한 공터가 됐습니다.
아직도 철거하지 못한 집들은 철근이 휘어지고 천장이 내려앉은 채 5년 전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대지진 당시 천4백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게센누마.
주민들은 지금도 진저리를 칩니다.
<인터뷰> 쿠마가이 히토시(쓰나미 피해 주민) : "게센누마에서 쓰나미가 제일 높았던 곳은 여기서 보이는 범위에서는 높이가 15~16미터였습니다."
황량한 부둣가에서 시가지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복구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상가가 모두 철거된 자리에는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 부흥 상가 20여 채가 들어섰습니다.
상인들은 한 달에 우리 돈으로 17만 원을 내고 임시 상가를 이용합니다.
저렴한 이용료는 물론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도우려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상인들에겐 큰 힘이 됩니다.
<인터뷰> 아키모토(관광객) :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를 사주고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상인들은 불안합니다.
일단 상가가 예전 모습을 찾으려면 앞으로 20~30년은 걸린다는 게 상인들의 생각입니다.
상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 도움의 손길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오노데라(게센누마 부흥촌 이사) :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줄었고, 오늘도 지금 보시는 것처럼 이 시간에 오는 사람이 없는 상황입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쓰나미 피해 주민 70여 명이 사는 피난 주택.
피난민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로, 매일매일의 건강 관리가 제일 큰 걱정거리입니다.
<녹취> 시민 단체 회원 : "오가사와라 씨, 안녕하세요? 별다른 문제 없습니까?"
`리아스'라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매일 피난민들의 건강을 확인하고 생활의 불편을 덜어주고 있습니다.
쓰나미 때 남편을 잃은 78살의 사다코 씨, 아들이 취직해 이곳을 떠나면서 이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밤중에 갑자기 아프진 않나 걱정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인터뷰> 우라구치 사다코(피난민) : "지금은 밤이 제일 걱정입니다.혼자서 열쇠를 잠그고 살기 때문에.."
사다코 씨처럼 아직도 임시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피난민은 후쿠시마와 미야기,이와테 등 3개 현에 10만 명이 넘습니다.
당초 2년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피난 주택 생활이 계속 연장돼 왔는데, 이제 다시 재연장이 불가피합니다.
택지 조성 공사가 자꾸만 늦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고쿠보 마코토(시민 단체 관계자) : "아직 택지조성이 끝나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에 택지조성이 모두 끝날 때까지 계속 여기서 살아야 하는 피난민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장기화되는 피난 생활과 고독감 등을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숨진 피난민이 지난 5년 동안 무려 3천 명이 넘습니다.
이곳 가설주택 주민들에게 이제 피해 지원금도 끊겼습니다.
언제 새집으로 이사를 갈지 아직도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쓰나미 피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복구의 장기화, 이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다름 아닌 후쿠시마 원전 주변 지역입니다.
일본 열도를 방사능 공포로 몰아넣었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규모 9.0의 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원자로가 과열됐고 그 결과 핵연료봉이 녹아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방사능이 유출됐습니다.
원전 사고로부터 5년, 취재진은 미나미소마 시청으로부터 출입 허가증을 받아 후쿠시마 원전 피난 구역으로 들어갔습니다.
피난 구역은 방사능 오염 때문에 주민이 살 수 없는 곳인데, 들판 곳곳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사람들이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방사능 오염 물질을 담은 검은 자루가 쌓여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이층집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나무 문짝은 다 떨어져 나갔고 가재도구는 누런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5년 전 쓰나미가 덮친 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곳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12km 정도 떨어진 피난구역 안입니다.
5년 전에는 약 70여 가구가 있었지만 모두 철거돼 지금은 허허벌판이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방사능오염 제거 작업은 언제 끝날지 아직도 기약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웃 마을에서 나고 자란 67살의 시가 씨와 함께 마을 안쪽을 둘러보았습니다.
쓰나미 당시 182명이 숨진 이 마을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유일하게 형체가 남아있는 집입니다.
집 안은 지난 5년 동안 야생동물들이 드나들면서 더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제염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주민은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시가(피해 주민) : "주택가가 아니라 산 쪽의 방사선 오염이 더 심각합니다. 여기는 (제한구역 지정을)해제해도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취재진은 후쿠시마 원전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갔습니다.
낮에만 제한적으로 출입이 허용되는 나미에마치.
제염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시가지는 은행도 낚시 가게도 5년 전 그대로입니다.
화석처럼 변해버린 시가지, 주민을 1명도 찾아볼 수 없는 유령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원전에서 약 5km 떨어진 주택가.
제염 작업을 했지만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1.6마이크로시버트를 넘습니다.
일반인의 피폭량 권고 한도는 연간 1밀리시버트인데,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0.11마이크로시버트입니다.
결국, 이 주택가의 방사능은 권고 한도보다 15배 가까이 높습니다.
나미에마치 주민이었던 가네다 씨.
대지진 이후 지금까지 임시 주택을 전전하며 무려 11번이나 이사를 했지만 옛집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젠 오사카로 이주한 며느리, 손녀들과 함께 5년 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집이 철거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중한 추억들을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서입니다.
<녹취> 가네다 씨 손녀 :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림이네."
옛집을 더 이상 볼 수도,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는 생각에 며느리도 손녀도 눈물을 흘립니다.
<인터뷰> 가네다 씨 며느리 : "살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죠. 눈물이 나네요."
정든 마을을 등져야 하는 일만큼은 피했다고 해도 고통이 덜한 것은 아닙니다.
40년 넘게 후쿠시마에서 젖소를 키워온 나미오카 씨, 쓰나미와 원전 사고 후 목장 일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후쿠시마산 우유라는 점 때문에 유제품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십 마리였던 젖소는 이제 1마리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팔고 나면 목장을 폐쇄할 생각입니다.
젊었을 때 여러 차례 받았던 우수 축산 농민 상장을 바라보며, 나미오카 씨는 애상에 잠깁니다.
<인터뷰> 나미오카 야스히로(축산 농민) : "이 상장들은 내 인생의 명예이고 자랑입니다."
수소폭발을 일으켰던 후쿠시마 원전은 `폐로`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지금은 폐로의 첫 순서로 '핵연료봉`을 원자로에서 꺼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연료봉을 모두 꺼내는 1단계 작업만도 앞으로 5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40~50년이 걸릴 폐로 작업은 지금 1부 능선도 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설령 반세기를 기다려 폐로 작업이 끝난다고 해도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일본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좁은 피난 주택을 전전하며 고통을 참고 있는 주민들이 언제 귀향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입니다.